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회 통제 수준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정부 출연연구기관에서 나왔다.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노인인구 증가 등 인구구조의 급변으로 건보 재정 상태가 장기적으로 위기에 빠질 위험이 큰 만큼, 국민 대의기관에서 보다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연구원은 이런 내용을 담은 '제2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2024∼2028년)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최근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
보사연은 보고서에서 저출산·고령화로 인구 규모가 줄어드는 데다, 경제마저 갈수록 악화하는 현실에서 건강보험의 건전성과 투명성을 높이려면 건보 예산안과 결산안 등을 국회에 보고해 심의, 의결을 받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건보재정 상황에 대한 대국민 정보 공개의 범위와 시기를 훨씬 더 확대해 국민이 건보재정 상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보사연은 주문했다.
국민건강보험은 전 국민 건강 안전망으로 중요한 의료보장 제도이므로, 국회가 보험재정 상황을 점검하고, 문제를 파악해서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등 규제와 지원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서는 감사원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감사원은 지난해 8월 발표한 '건강보험 재정관리 실태' 감사보고서에서 건보재정 실태를 샅샅이 들여다보면서 특히 건보 당국이 국회 등 외부의 통제를 제대로 받지 않은 채 재정을 허술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문제 삼으면서 개선하도록 강력하게 요구했다.
감사원은 "건강보험이 국민 보건 향상이라는 제 역할을 다하려면 무엇보다 재정고갈의 위험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상태가 되어야 한다"며 "건보재정의 지속 가능한 운용을 위해서는 국회 심의를 받지 않는 현재의 건보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게다가 건강보험은 준조세적 성격의 건강보험료와 재정적자 보전 성격의 정부지원금을 주된 재원으로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국회의 심의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국민이 건보료를 조세와 같이 보고 있고, 실제로 건보 재원 자체가 국민이 의무적으로 내는 보험료로 조성되는 만큼, 기금화해서 대의기관인 국회가 건보예산과 결산 등 재정 전체를 심의, 의결하는 등 통제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건보 재정에 대한 외부 통제를 강화할 경우 재정 책임을 분산해 주지 균형보다는 지출 위주로 재정을 운영할 우려가 있는 등 보험재정 운용 주체가 모호해질 수 있는 점 등을 들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여기에다 건보 제도 운용의 경직성도 증가해 코로나와 같은 재난이 벌어질 때 국민 의료수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수 있고, 전문적 의사결정을 왜곡할 위험이 있는 점 등을 꼽으며 외부 통제 강화에 반대했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건강보험을 비롯해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8개의 사회보험이 있다.
이 가운데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제외한 다른 6개 사회보험은 모두 국가재정에 포함돼 기금으로 운영되며 기금운용계획과 결산에 대해서는 국회의 심의·의결을 거치는 방식으로 통제받고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은 다른 사회 보험성 기금과는 달리 건보공단의 일반회계로 운영되며 정부지원금을 제외하고는 예산과 결산에 대한 국회 심의 등 외부 통제를 받지 않고 있다.
건보재정의 주요 의사결정은 건강보험사업의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건보 정책 최고 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통해 이뤄지고 있다.
복지부는 건강보험법에 따라 건정심을 복지부 장관 소속으로 설치·운영하면서 건보 적용 여부를 정하는 요양급여의 기준과 비용, 보험료율, 의료공급자들의 수입에 직결되는 의료 수가 등 건보재정에 영향을 주는 주요 의사결정 안건들을 건정심의 심의·의결을 거쳐 추진하고 있다.
건정심은 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가입자 측을 대표하는 노동계와 경영계 등의 위원 8명, 의약계를 대변하는 위원 8명, 복지부·건보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등 공공을 대표하는 위원 8명 등으로 구성되며, 위원들은 복지부가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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