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요양병원에서 난 불…인명피해 '0' 이유는 철저한 대비

건강·거동 상태 따라 병실 배치…위험군에는 특정 색상 팔찌
휴지통도 금속 재질로 모두 교체…"진화보다 예방이 더 중요"

건강투데이 승인 2023.09.15 17:57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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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난 요양병원 [전북소방본부 제공]

동이 채 트지도 않은 15일 오전 5시 15분께 전북 정읍시 한 요양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거동이 힘든 환자들이 다수 머무는 시설이어서 인명피해가 우려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친 사람은 물론이고 환자들이 병원 밖으로 대피하는 소동조차 없었다. 숱한 인명피해를 낸 앞선 여러 요양병원 화재 사례에 비춰볼 때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

고령의 환자 300여명이 입원한 이 요양병원은 어떻게 화재 피해를 보지 않았을까?

전북소방본부와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에 따르면 이 병원은 평소에도 자체적으로 매뉴얼을 세우고 사소한 것부터 철저히 화재 예방 수칙을 따랐다.

먼저 이 병원은 환자를 받을 때부터 거동 상태에 따라 층별로 병실을 배정했다. 2∼5층에 있는 병실 중 뛰는 게 가능한 환자는 5층, 보행이 불가능한 환자는 2층에 배치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불이 났을 때 자체적으로 피난이 불가능한 환자들이 고층에 고립되는 일이 없어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소방 당국은 설명했다.

또 병원은 환자들이 상태별로 각기 다른 색상의 팔찌를 착용하도록 해 마찬가지로 화재 취약층이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줄였다. 긴급한 재난 상황에서 위험군을 의미하는 팔찌를 찬 환자를 먼저 돌볼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여기에 20년 넘게 병원 근처에 거주하는 소방 안전관리자가 꼼꼼하게 소방 시설을 점검하고 화재 가능성을 살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왔다. 실제 이날 화재는 1층 식당에서 발생했는데, 스프링클러와 방화문 모두 제때 작동해 연기가 병실까지 퍼지지 않았다.

심지어 이 병원은 보호자나 방문객이 버린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 가능성에 대비해 화장실 휴지통을 모두 불에 타지 않는 금속 재질로 교체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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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요양병원서 화재 [전북소방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 병원은 지난해 소방시설 관리 여부를 따지는 실무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최근 남원의료원 화재를 계기로 이뤄진 병원급 의료기관 안전 조사에서 단 한 건의 지적도 받지 않았다고 소방 당국은 밝혔다.

전북소방본부 관계자는 "화재를 빨리 진압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이 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라며 "평소 병원에서 철저히 화재에 대비한 결과,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수 환자가 입원한 다른 의료기관도 이번 사례를 계기로 스프링클러나 방화문 등 소방시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꼭 점검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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