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현영 기자 = 최근 미국·멕시코 등 외국에서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이 음성적 유통망을 통해 신종 마약 용도로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불법 펜타닐이 2021년 기준 18~49세 인구의 사망 원인 1위로 지목되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중국이 펜타닐 원료 공급처로 지목되면서 '신아편전쟁'이란 말이 나올 만큼 미·중 간 외교 갈등의 불씨로도 부상했다.
이에 따라 이미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어버린 우리나라도 결코 펜타닐 '안전 지대'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전통적 마약류와 달리 불법 펜타닐은 해외에서 온라인으로 유통되는 사례가 흔하다는 점에서 '온라인 강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는 언제든 취약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 펜타닐이란
펜타닐은 암 환자나 수술 환자 등 고통이 극심한 환자에게 투약하는 마약성 진통제로 벨기에의 글로벌 제약사 얀센이 개발했다. 패치, 정제, 주사제 등으로 극소량만 투여해도 워낙 효과가 좋아 의료용으로 널리 각광받아왔다.
그러나 효과가 좋은 만큼 부작용도 심각하다. 헤로인의 50배, 모르핀의 80배 이상 중독성과 환각 효과를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뾰족한 연필심에 올릴 정도 양인 2㎎ 정도만으로 호흡중추를 마비시켜 사망에 이르게 해 '죽음의 마약'으로 불린다. 현대 의학이 창조한 가장 강력한 진통제의 배신인 셈이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만큼 가격도 기존 마약류에 비해 저렴하고 투약하기도 편리한데다 강력한 효과까지 지녀 마약 유통상과 젊은 중독자들 사이에서 신종 합성 마약의 제왕으로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중국, 멕시코 등에서 많은 양의 펜타닐이 밀수입되면서 펜타닐에 취한 젊은이들이 마치 좀비처럼 걸어 다니는 영상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펜타닐은 '좀비 마약'으로 불리기도 한다.
천영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2일 SBS 라디오에 출연해 "마약은 각성제 계통과 안정제 계통이 있는데 각성제 계통 중 최악이 필로폰, 안정제 계통 중 끝판왕이 펜타닐"이라고 말했다.
◇ 펜타닐 오·남용, 국내 상황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처럼 해외에서 불법으로 제조된 펜타닐이 아닌, 의사가 처방한 펜타닐을 빼돌리는 식으로 불법 유통이 발생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펜타닐(주사제 외 패치·정제) 처방 건수는 2018년 89만1천434건에서 2021년 148만8천325건으로 67% 늘었다.
이와 관련해 천 의사는 "3년간 수술한 환자나 암 환자가 67% 증가했을 리는 없고 펜타닐에 대한 오·남용이 심각한 수준으로 가고 있다고 이해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했다.
펜타닐 등 의료용 마약류는 환자의 질병 치료 또는 처치를 위해 사용되기에 처방 건수의 증가가 곧바로 오·남용 증가를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일부러 펜타닐을 처방받기 쉬운 병원을 찾아다니는 중독자들이 있어 쉽게 넘길 수 없는 수치다.
또 피부에 붙여 간편하게 사용하는 펜타닐 패치 제품이 소셜 미디어 등 온라인을 통해 불법으로 유통되면서 인터넷 이용에 익숙한 10·20대가 중독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2021년 5월 경남에선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아 판매·투약한 10대 피의자 42명이 검거되는 일도 있었다.
펜타닐 원료를 불법 제조해 수출하는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도 문제다. 우리보다 거리상으로 훨씬 먼 미국이 급속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른 만큼 우리도 언제든 펜타닐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천 의사는 중국과 가까운 우리나라도 펜타닐에서 안전할 수 없지 않겠냐는 질문에 "분명히 그렇다"고 답했다.
◇ 정부 "예의 주시중"…처방 정보 분석·현장 감시
식약처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미국과 비슷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가받은 펜타닐이 불법 유통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중독 확산을 막으려면 병·의원 처방을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안전사용기준을 마련하고 위험성이 높은 물질에 대해 '사전알리미' 제도를 시행하며 불법 사용을 예방하고 있다.
사전알리미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보고된 처방·사용 정보를 분석해 안전사용 기준을 벗어나 마약류 진통제를 처방한 의사에게 주의를 촉구하고 처방 개선 여부를 관리하는 제도다. 식약처는 여기에 펜타닐을 추가해 관리 중이다.
마약류 의료쇼핑 방지 정보망도 운영 중이다. 이 제도는 과다·중복 처방 등 마약류의 오남용이 우려되는 경우 처방·투약하지 않을 수 있도록 의사가 환자의 마약류 투약 이력을 진료·처방 시 확인·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다.
현장 감시도 진행했다. 지난 2021년부터 작년 9월까지 식약처는 18세 미만 청소년에게 펜타닐 패치를 처방하는 등 마약류 진통제 과다 처방과 오·남용이 의심되는 의료 기관 105곳을 점검하고 업무 목적 외 취급이 의심되는 의료기관 66곳을 적발해 수사 의뢰 등 조치했다.
관세청도 2일 한국의 마약 청정국 지위 회복을 위해 '마약과 전쟁'을 선언하고 불법 마약류의 국내 반입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고강도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 정부, 판매·유통 경로 제대로 파악하나
그러나 이러한 제도로도 펜타닐 중독자들이 처방이 쉬운 병원을 찾아다니는 현상을 모두 막기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펜타닐이 말기 암 환자에게 꼭 필요한 의약품이기에, 실제 진통제로 사용됐는지 불법으로 사용됐는지 파악하기 어렵고 일부 제도는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은 "식약처에서 2021년부터 '마약류 의료쇼핑 방지 정보망'을 모든 마약류 의약품으로 확대해 시행하고 있지만, 의무사항이 아니다 보니 환자 한 명에게 여러 건의 마약성 진통제가 처방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마약 단속 및 관리 인력 부족도 문제다.
식약처 관계자는 "사전알리미 제도를 점점 확대하려면 인력을 늘릴 필요가 있다"며 "현재는 인력이 빡빡한 편"이라고 말했다.
의료인들의 마약류 불법 유통 퇴치 노력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천 전문의는 "의사들이 마약류 중독에 대한 각성을 좀 가져야 한다. '설마 중독자겠냐는 생각보다는 이미 우리나라가 마약 청정국을 벗어났기 때문에 환자 처방하는 데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치료와 재활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대책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지적했다.
<기사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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