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지막 경고

말세의 경고,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전덕주 승인 2021.08.31 19:34 | 최종 수정 2021.09.02 22:40 의견 0

   현 인류가 봉착한 난관의 현실 상황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러왔기에 받는 벌인 것일까? 지구촌이 몸살을 앓도록 전 세계를 강타하는 극한의 이상기후 현상들, 현 인류에게 경고하듯 전 세계를 덮친 팬데믹 시대 상황, 하루가 멀다 싶어 매일 진화하는 기상천외한 범죄의 폭증, 일반인을 초월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획기적인 범죄율 증가 등, 작금의 시대가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의 신호들을 그냥 이대로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세상을 움직이는 도(道)의 리듬은 이미 깨졌고, 도덕과 양심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은 필자만의 착각은 아니리라 여겨진다. 소경, 귀머거리 같은 괴씸한 인간들이 마치 신(神)에게 조롱당하듯 기하급수적으로 양산되는 비정상적인 현실 상황 속에 홀로 서 있는 나는 누구인가?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이 시대와 함께 휩쓸려 사라져갈 것인가? 아니면 이 시대를 읽고 어떻게든 문제의 본질과 원인을 찾아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고 맞이하는 쪽에 설 것인가? 이 양자 중의 선택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시대적 숙명이 틀림없으리라 확신한다.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지구촌을 물리학적으로 보면 3차원 공간 세계에 시간의 차원이 더해진 4차원 시공간의 세상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의 축을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를 전제한 끝없는 현재의 찰나는 무수한 인과관계의 연속이다. 이는 불교의 ‘연기(緣起)’ 개념과도 맥을 같이 하는데 원인과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현재의 모든 결과물은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것으로 설명되어야 하고, 역으로 다시 결과물의 과정들을 더듬어 올라가면 그 원인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물이 있음은 건물주가 있음을 의미하고, 지금 내 손에 스마트 폰이 들려있음은 스마트 폰을 만든 사람들과 유통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그 원인과 과정을 더듬어 읽어낼 수 있는 하나의 기호이자 언어와도 같다는 것이다. 

   “도는 하나로 통한다(一以貫之)”는 공자의 가르침처럼 과학, 철학, 종교 등 각기 분야마다 저마다 견해의 각도 차이는 있을지라도, 같은 하늘 아래 지구촌에 공존하는 삶의 이치에 대해서는 서로 말만 다를 뿐, 결국 서로에게 같은 이야기를 외치고 있지 않은가. 반야심경의 내용 중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의미를 플라톤식으로 풀어보자면, 모든 물질세계는 허상이고 기호에 불과 하지만 이상적이고 영원불변하는 실체인 원형의 세계, 즉 이데아(idea)를 인식하고 관심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이데아를 먼저 발견한 사람이 고정관념이 만든 현실의 허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아무리 진실을 외쳐도 그들은 스스로 귀를 막고 들으려 하지 않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작금의 현실 상황이 오늘날 우리 모습의 거울과 같은 인과과정의 결과라는 자명한 생각을 가지는 것이 현명할 것이고, ‘동굴의 비유’를 교훈 삼아 만일 이데아(idea)를 찾은 사람의 외침이 있다면, 관심이라도 가져야 할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자연 만물 위에 과학이 있고, 과학 위에 철학이, 철학 위에 종교가 있다. ‘종교(宗敎)’라는 한자 속에 ‘으뜸 된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의미가 있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만 가지 가르침 중에 가장 높은 차원의 도(道)가 종교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만일 종교 세계가 타락하고 무너졌다면 그 밑의 하부 조직들은 이미 말할 필요도 없는 상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성경은 이 세상에 빛과 소금 같아야 할 종교 세계가 타락할 시대가 올 것을 미리 예언하고 있으니, 이를 ‘말세(末世)’라 표현하고 있다. 혹자들은 이 말세를 ‘지구촌의 멸망’으로 심심치 않게 오해들을 하는데, 종교적 관점의 말세는 낡고 부패한 한 시대를 종식 짓고 새로운 시대가 출발 됨을 의미한다. 이성계의 집권으로 고려 시대가 끝나고 조선이 건국되었다 하여 지구촌이 없어지지는 않았듯이 말세와 종말은 새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눅12:56)”는 말씀이 있는데, 특히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시대를 분별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쳐주고 있다. 

   우리가 인과과정에 의한 오늘날을 살고 있다면, 작금의 시대가 정상적인 상황인지, 아니면 비정상적인지 그 여부를 관심 가지고 알아보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어지러운 난관의 현실 상황이 계속될수록 시대 분별의 안목은 우리에게 더욱 필수적 덕목이라 사료 된다. 기준이 모호하고 신뢰하기 어려운 이단 논쟁으로 동굴을 벗어나 이데아를 외치는 이들을 면박 주기에만 급급함을 지양하고 시대적 분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허심탄회하게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모조품이 많다는 것은 그 중 오리지널이 있을 것이니 찾으면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 까지는 우리의 자유의지 앞에 시대 분별의 기회가 놓여 있음을 우리는 감사해야 할 것이며, 생사 갈림길 앞 같은 오늘날 말세 적 현실 상황을 ‘햄릿’의 명대사로 빗대어 글을 맺을까 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전     덕     주
                                                                                      하늘마을예술창작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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